파워볼중계 파워볼분석 나눔로또파워볼 베팅 프로그램

■바이든은 누구
50년 정치여정 ‘다자주의’ 중시
상원당선 뒤 아내·딸 잃는 아픔도
오바마 러닝메이트로 재기 성공
세번 도전끝 ‘대권 꿈’ 결실 눈앞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4일(현지시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270명 확보에 충분히 도달할 것 같다”며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가 4일(현지시간) 자신의 정치적 기반인 델라웨어주 윌밍턴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통령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 270명 확보에 충분히 도달할 것 같다”며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서울경제] “나는 편의보다 지적 동의와 개인적 원칙을 우선으로 삼는 바람에 힘든 길을 걸었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에서 나는 내 직감을 믿으며, 어느 한쪽 편에 서기 어렵게 된 것에 대해서는 사과하지 않는다.”파워볼사이트

조 바이든이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에서 밝힌 그의 신념의 한 대목이다. 바이든은 평생 특정 이념보다는 자신의 판단과 당대의 여론과 현실에 충실히 따르는 행보를 보여왔다. 걸프전에는 반대했지만 지난 2001년 9·11사태 이후에는 전쟁에 찬성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같은 현실주의 정치관 속에서도 그는 50년 정치 이력에서 전통 민주주의 가치와 다자주의 원칙을 지켜왔다. 이는 대권 도전 3수만에 차기 대통령 자리에 한 발 더 성큼 다가서게 된 바탕이기도 하다.

정치에서는 미국식 민주주의, 통상에서는 다자주의를 옹호하고 국내 경제에서는 진보적 가치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미국 우선주의와 일방주의 외교, 독불장군 스타일로 상징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는 크게 다르다.

바이든은 가톨릭 신자지만 부통령이던 2012년 버락 오마바 대통령보다 먼저 동성결혼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낙태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의 선택권에는 동의한다고 밝혀 가톨릭 단체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말더듬증 딛고 고교 졸업연설=바이든은 1942년 펜실베이니아주 스크랜턴에서 아버지 조지프 로비넷 바이든 시니어와 어머니 캐서린 바이든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급격히 가세가 기울자 1952년 가족과 함께 훗날 자신의 정치 기반이 된 델라웨어주로 이사했다. 바이든은 청소와 중고차 판매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아버지에게서 성실함과 포기를 모르는 의지를 배운다. 집단 따돌림의 이유였던 말더듬증도 아버지의 방식으로 극복했다. 매일 아침 제일 먼저 학교로 나가 스피치 연설을 했고, 결국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단 한 번도 말을 더듬지 않고 연설을 해냈다. 지금도 바이든은 이 경험이 그 무엇도 자신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자신감의 원천이 됐다고 회고한다.

◇왕복 4시간 기차 출퇴근한 싱글 대디=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연설에 감명받는 그는 정치인이 되기 위해 ‘정치등용문’ 로스쿨에 진학한다. 로스쿨 재학 중 첫 번째 아내 닐리아 헌터를 만나 결혼한 뒤 1972년 공화당 거물이었던 케일럽 보그스를 누르고 델라웨어주 상원의원에 당선된다. 역대 여섯 번째 최연소 상원의원의 탄생이었다.파워사다리

하지만 공식 취임 직전 그는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다. 두 아들은 사고로 크게 다쳤다. 바이든은 당시 큰 충격에 “깨진 유리 파편이 온몸을 관통”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취임 포기까지 생각했던 그는 동료들의 설득에 마음을 다잡고, 두 아들이 입원한 병원에서 상원의원 취임선서를 한다. 취임 이후에도 그는 집에서 워싱턴DC까지 왕복 4시간 거리를 기차로 출퇴근하며 두 아들을 사랑으로 키운다. 워싱턴DC에서 단 한 번도 잠을 자지 않았던 유일한 의원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이유다.

◇대선 잠룡이었지만 중도하차=1977년 현재의 아내인 질 제이콥스와 결혼한 바이든은 10년 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섰다가 3개월 만에 사퇴한다. 연설문 표절 의혹이 불거지면서다. 설상가상으로 이듬해에는 뇌동맥류가 발견돼 목숨을 건 수술을 두 차례나 받는다. 당시 그의 동료들은 바이든의 정치 인생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약 1년 만에 정계로 복귀해 활약한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2001년과 2007년 상원 외교위원장에 오르며 워싱턴의 대표적인 외교통으로 자리매김한다. 바이든은 기세를 몰아 다시 한 번 2008년 대선을 위해 당내 출마를 선언한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등 쟁쟁한 경쟁자들에게 밀려 결국 또 중도 하차하게 된다.

◇오바마와의 브로맨스=굵직한 경력에도 속절없이 무너진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오바마였다. 그는 짧은 정치 경험과 적은 외교 활동이라는 자신을 단점을 보완해줄 러닝메이트로 바이든을 지명한다. 그렇게 바이든은 오바마의 손을 잡고 대선 운동에 나섰고, 부통령으로서 백악관에 입성하게 된다. 19세의 나이 차에도 둘은 서로의 가장 큰 지지자가 돼 국정을 꾸려 나갔고, 2012 대선 역시 승리한다. 2015년 뇌종양으로 투병하던 아들 보를 떠나보내며 슬픔에 빠진 바이든의 곁을 지킨 사람도 오바마였다. 바이든은 훗날 당시 오바마의 도움에 감사해 하며 “오바마는 단순한 상사나 친구 이상으로 보의 죽음을 겪었다”며 그를 “또 다른 가족”이라고 표현했다. 8년 간 부통령 자리를 지킨 바이든은 노고를 인정받아 2017년 미국 최고 영예 훈장인 ‘자유훈장’을 받는다.

◇극복해야 할 과거사도=백악관이 눈앞에 보이지만 그가 아직 극복하지 못한 과거사도 있다. 성추행 의혹과 아들 헌터가 연루된 우크라이나 의혹이다. 4월 바이든이 사실상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되자 바이든 상원의원실에서 근무했던 한 여성이 바이든으로부터 성추행은 물론 한 차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바이든 측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두려움 없이 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도 “진실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며 반박했지만 의혹은 말끔하게 풀리지 않은 상태다. 지난달 뉴욕포스트는 우크라이나 에너지기업 부리스마에서 임원으로 일하고 있던 아들 헌터가 다른 임원의 청탁을 받고 당시 부통령으로 있던 부친에게 로비를 주선했다고 보도했다.

/곽윤아기자 ori@sedaily.com

개표 중단 소송 잇따라 기각
전문가 “결과 바꾸진 못할 것”

펜실베이니아선 1.8m 거리두고 개표 참관 허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선거 캠프의 고문인 팸 본디 전 플로리다주 법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 컨벤션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개표 과정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게 해 달라는 요청을 승인한 법원 결정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필라델피아=AP연합뉴스

미국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무더기 소송전이 현실화하는 가운데 미국 1심 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한 소송에서 잇따라 기각 결정을 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후보에 밀리는 모든 지역에서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공언했으나 아직 법원 기류는 그에게 유리한 상황이 아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선캠프가 공화당 참관인에게 개표 과정을 숨기고 있다며 미시간주와 조지아주에서 제기했던 소송이 1심에서 기각됐다. 트럼프 캠프 측은 소송에서 민주당 측이 공화당 참관인에게 개표 과정을 숨기고 있다며 미시간주에서의 개표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신시아 스티븐 스미시간주 1심법원 판사는 중단 청구를 구두로 기각했다.

트럼프 캠프가 조지아주 채텀 카운티 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낸 소송도 1심에서 기각됐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우편투표 접수 시한인 대선일(3일) 오후 7시 이후 도착한 우편 투표용지와 이전에 도착한 용지가 섞여 처리돼 이를 분리해야 한다면서 불법 투표를 막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트럼프 캠프가 1심 판결 불복 시 주 고등법원과 대법원에 각각 항소·상고가 가능하다.

반면 펜실베이니아주 항소 법원은 개표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 6피트(1.8m)의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한다는 조건하에 허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로 펜실베이니아에서 큰 법적 승리를 했다고 자평했다.법률 전문가들은 대체로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시도가 승자 확정을 늦출 순 있으나 결과를 바꾸진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버드대 법학과 교수인 노어 펠드먼은 블룸버그 기고문에서 “자신이 이길 것으로 생각한 지역에서 뒤지고 있다는 이유로 개표를 중지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개표 중단이 법적 근거가 없다고 일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표 첫날부터 연방대법원을 언급하며 법정 다툼을 공식화했으나 대법관이 그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할지는 미지수다. 현재 연방대법관은 보수 6명·진보 3명으로 트럼프 대통령에게 유리한 구도다. 최근 그가 지명한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이 이념적으론 보수적이지만 당파적 인물은 아니라는 평가도 있어 유불리를 단정하기 어렵다. 이와 관련해 데이비드 스트라우스 시카고법대 교수는 “연방대법원은 2000년 앨 고어 대 조지 W 부시 판결로 사법부의 합법성이 심각하게 떨어졌던 것을 알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와 달리 연방대법원이 그의 손을 들어주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파워볼실시간

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소통과 포용으로 장애공감사회 만들자] ‘제주도농아복지관’
2005년 개관, 도내에 6700여 명의 청각언어장애인
청각기능과 언어기능을 상실한 중대한 장애
심층적인 상담 통한 서비스 제공..수어통역서비스, 언어재활교육 등
전국 최초로 시청각장애인서비스지원사업 실시
미국의 헬렌켈러법 등 해외사례 찾아 전문적인 서비스 제도화 노력
모든 미디어에서 수어자막, 문자자막 등 필수화 등의 노력 필요

■ 방송 : CBS 라디오 <시사매거진 제주>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17:05∼18:00)
■ 방송일시 : 2020년 11월 6일(금) 오후 5시 15분
■ 진행자 : 류도성 아나운서
■ 대담자 : 제주도농아복지관 문성은 관장

제주도농아복지관 문성은 관장(사진=제주CBS)
제주도농아복지관 문성은 관장(사진=제주CBS)

이번에는 ‘소통과 포용의 발견! 장애공감 사회를 만들어갑시다’ 시간인데요. 오늘은 제주도농아복지관 문성은 관장 만나보겠습니다. 관장님 안녕하세요?

◇류도성> 제주도농아복지관은 어떤 곳인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문성은> 제주도농아복지관은 청각언어장애인과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를 위한 전문적인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시설입니다. 제주도농아복지관은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청각언어장애인을 위한 전문적인 재활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2005년에 개관해 15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복지관을 설립한 故오원국 이사장은 청각언어장애 당사자로 평소 청각언어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고, 우리 복지관의 30여명의 직원들은 그 마음을 이어 받아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류도성> 제주도에 청각언어장애인이 얼마나 있나요?

◆문성은> 2020년 6월말 기준으로 약 6700여명 정도 됩니다. 그러니까 도민 100명 중 한명은 청각언어장애인입니다.

◇류도성> 청각언어장애인은 겉으로 보기에는 비장애인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는데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히 더 어려운 점이 있을까요?

◆문성은> 청각언어장애인은 외형적으로 어려움이 없어 보이지만 인간의 여러 가지 감각기능 중 소리를 듣는 청각기능과 말하는 언어기능을 상실한 매우 중대한 장애인입니다. 들리지 않기 때문에 상대의 의사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고,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또 소리로 얻을 수 있는 정보, 즉 사람들과의 대화, 라디오 등 매스미디어 및 세상의 온갖 소리에서 차단되어 각종 정보로 인한 지식의 습득과 학습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비장애인과는 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해 살고 있어서 사회재활도 매우 중요하게 지원해야 합니다. 또 청각언어장애인은 육체적인 단순노무직 외의 사고력과 응용력 등을 활용해야 하는 직종에 취업하기가 곤란합니다. 그래서 직업재활에도 상당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주도농아복지관은 최근 복지공감아카데미의 일환으로 온라인강의를 진행했다.(사진=자료사진)
제주도농아복지관은 최근 복지공감아카데미의 일환으로 온라인강의를 진행했다.(사진=자료사진)

◇류도성> 제주도농아복지관에서는 주로 어떤 사업을 하시나요?

◆문성은> 청각언어장애인에 대한 심층적인 상담을 통해 개별 욕구를 파악하고, 그 욕구에 기반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수어개발 및 연구사업, 수어통역서비스제공, 언어재활교육, 수어교육, 문장 독해와 문장구사능력 향상교육 등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기 위한 의사소통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직업재활서비스로는 커피바리스타 자격증 취득지원, 제과제빵기능사 자격증 취득지원, 목공DIY 교육, 3D프린팅 교육 등이 있고, 특히 제주에서 처음으로 발달행정보조사 양성교육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청각언어장애 어르신을 위한 주간 돌봄서비스와 자서전 집필과 출판을 지원하여 자긍심을 고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종 사회재활프로그램과 문화, 예술, 생활체육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실시하고 있고, 청각언어장애인의 화애로운 가정을 위한 부모교육이나 가족기능강화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복지관에서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시청각장애인이 사람답게 살아가도록 지원하기 위해 시청각장애인서비스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는 중복장애로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져 주위의 관심에서 배제되었던 시청각장애인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전국 최초로 다양한 재활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고 있습니다.

◇류도성> 전국 최초로 시청각장애인서비스지원사업을 하신다고 하셨는데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문성은> 시청각장애인은 시각기능과 청각기능, 언어기능이 손상되어서 의사소통과 스스로의 활동에 중대하게 지장을 받는 장애인입니다. 외국의 헬렌켈러를 연상하시면 되겠습니다. 우리 복지관에서는 시청각장애인이 그 누구의 도움과 지원을 받지 못하고 복지사각지대에 있음을 알고 시청각장애인서비스지원사업을 실시하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들에 대한 직접 서비스 제공 사례가 없기 때문에 해외 사례를 찾아 배우면서 시청각장애인에게 맞는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헬렌켈러법을 제정하고 헬렌켈러센터를 운영하면서 시청각장애인을 위해 특화되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으며, 유럽의 여러 나라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이 전무한 상태여서 우리 제주도농아복지관에서 이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도내 시청각장애인 전수에 대한 실태와 욕구를 조사하고 있고, 의사소통수단 개발 및 교육 등 각종 재활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제주도농아복지관 전경(사진=자료사진)
제주도농아복지관 전경(사진=자료사진)

◇류도성> 마지막으로 제주지역의 청각언어장애인과 시청각장애인을 위해 사회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문성은> 먼저 청각언어장애인은 감각기능장애인입니다. 이는 인간답게 살아가는데 매우 중대한 장애인입니다. 따라서 이에 맞은 서비스 제공이 제도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매스미디어에서는 수어자막, 문자자막 기타 의사소통수단을 동원해 방송물을 청각언어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똑같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이들의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이들만을 위한 직종개발과 직업훈련, 직장에서의 근로환경 개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리고 청각언어장애인의 교육을 위해 학교 교육환경이 청각언어장애인에게 맞추어져야 합니다. 의사소통이 가능한 교사, 청각언어장애인이 이해할 수 있는 교재, 청각언어장애인에게 맞추어진 교육커리큘럼과 교수학습방법의 개발과 시행 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시청각장애인은 청각언어장애인에게 시각기능의 상실이라는 더 큰 장애가 더해졌기 때문에 이들에게 알맞은 각종 제도가 마련되어져야 합니다. 미국의 헬렌켈러법에는 거리에서 시청각장애인을 만났을 때 우선 도움을 주지 않으면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장애인이라는 것이며, 이에 따라 사회구성원 모두가 도움을 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장애인이기 때문에 무언가 다르고 특별하게 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의 일상에서 보통의 사람들과 똑같은 선택권과 결정권을 가지면서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그러한 삶을 도울 수 있는 사회가 필요하고 그런 사회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 류도성> ‘소통과 포용의 발견, 장애공감사회를 만들어갑시다’ 오늘은 제주도농아복지관 문성은 관장과 얘기 나눠봤는데요. 오늘 말씀은 여기까지 듣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주CBS 류도성 아나운서] ryuds@cbs.co.kr

JDC사회가치추진실..’디지털 뉴딜’ & ‘AI강국 코리아’ 지역교육 진행
인공지능 공존시대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교육프로그램 진행
12월 12일 ~ 13일,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할 수 있는 AI캠프 준비 중
제주 사투리 데이터를 수집해 AI에게 학습시켜 ‘제주어 보전’에도 활용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사회가치추진실 정원치 과장.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사회가치추진실 정원치 과장.

■ 방송 : CBS 라디오 <시사매거진 제주> FM 제주시 93.3MHz, 서귀포 90.9MHz (17:05~18:00)
■ 방송일시 : 2020년 11월 6일(금) 오후 5시 5분
■ 진행자 : 류도성 아나운서
■ 대담자 :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사회가치추진실 정원치 과장

제주CBS와 JDC가 함께하는 공동기획입니다. 기업의 지역공헌사업, 그리고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선도적인 대비로 지역의 꿈을 함께 이뤄보자는 <제주의 꿈을 함께>시간인데요. 오늘은 사회가치추진실 정원치 과장 직접 나오셨습니다. 과장님 안녕하세요?

◇류도성> 최근 JDC에서 도민들에게 정부의 ‘디지털 뉴딜’과, ‘AI 강국 코리아’ 정책에 맞춘 지역 교육과 경제 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우선 AI가 무엇인지 도민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주실까요?

◆정원치> 우선 AI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실생활에 사용하는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이 필요한데요. 일반적인 프로그램은 개발자가 각 상황에서 어떻게 작동해야 하는지 규칙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코딩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서 요리하는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온도가 80도 이하에서는 렌지를 켜고, 100도 이상에서는 렌지를 꺼라’ 등의 규칙을 수백에서 수천가지를 정해서 기계나 컴퓨터에 정해진 규칙대로 움직이게 입력하는 것이 바로 프로그래밍 과정입니다.

그런데 AI는 데이터와 결과를 주고 스스로 규칙을 추론하도록 합니다. 요리하는 AI를 만든다면 이미 요리를 잘하는 셰프가 언제 렌지를 켜고, 언제 렌지를 껐는지 등의 많은 데이터를 주고 요리를 하기 위한 규칙을 만들라고 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AI에게 일을 시킨다면, 복잡한 정의 없이 데이터만 주면 되고, 데이터만 있다면 요리를 몰라도 요리하는 AI를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에 인공지능이 갑자기 성능이 좋아지고 세상의 조명을 받은 이유는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달로 디지털로 된 수천만, 수억의 데이터가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류도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AI 환경조성의 일환으로 JDC에서 제주도내외 초중고 학생 및 학부모를 대상으로 AI 관련 캠프를 추진한다는데, 어떤 내용인가요?

◆정원치> 앞으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인공지능 공존시대에 맞서 도내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캠프를 통해 교육하는 프로그램으로 진행될 것입니다. AI의 정의와 종류부터 데이터로 추천 알고리즘을 만들고 딥러닝을 활용하는 응용과정까지 구성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JDC는 도내 초중고생과 학부모가 함께할 수 있는 AI캠프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JDC는 도내 초중고생과 학부모가 함께할 수 있는 AI캠프를 준비하고 있다. (사진=자료사진)

◇류도성> 구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대상별 프로그램을 알려주세요?

◆정원치> AI 캠프는 12월 12일~13일 2일간 진행될 예정이며, 학생과 학부모가 같이 참여해서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와 인공지능의 응용을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고, 이에 대비한 사전교육을 11월 28일에 진행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JDC홈페이지에 공지되어 있습니다.

◇류도성> 그리고 제주의 첨단 미래인력 양성의 기반 마련으로 JDC와 제주대학교가 함께하는 아카데미도 있다면서요?

◆정원치> JDC와 제주대가 함께 인공지능을 보고, 만지고, 체험하면서 학습할 수 있는 체험관을 개관해서 관련 교육 프로그램을 참여자 대상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연말에는 도민들께서 제주첨단과학기술단지 내 세미양 빌딩에서 인공지능 체험관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류도성> 도민들이 어떻게 참여할 수 있나요?

◆정원치> 인공지능 캠프 관련된 프로그램은 JDC 홈페이지나, 제주CBS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하구요. AI 체험관이나 교육프로그램 소식 또한 홈페이지 등을 통해 참여 방법을 공유하도록 하겠습니다.

◇류도성> 코로나19로 촉발된 경기침체 대응을 위해 JDC는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나요?

◆정원치> 디지털 뉴딜에 맞게 인공지능 학습용 데이터 구축 사업을 추진 중에 있습니다. 제주 방언, 사투리 데이터를 수집하여 데이터로 만들고 이를 AI에게 학습시켜 제주 사투리가 보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많은 금액은 아니지만, 사투리가 가능하신 분들께는 소정의 정부지원금을 드립니다. 도민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리며 JDC 홈페이지에 공지사항에서 JDC 방언 발화자 모집 공고를 통해 참여방법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류도성> 마지막으로 도민들에게 하실 말씀 있으세요?

◆정원치> 흔히 우리는 열역학 법칙이 정리되고 나서, 증기기관차가 만들어 졌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증기기관이 만들어 지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열역학 법칙이 정리됐습니다. 에디슨이 전구를 만들었을 때, 축음기도 만들고 심지어 발전소까지 만들었지만, 인류는 전자라는 개념과 존재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지금 인공지능과 딥러닝을 보면 앞서 이야기 했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왜 잘되는지 우리는 명확한 원리를 완벽하게 알지 못하지만, 이미 인공지능과 딥러닝은 세상에 많은 부분을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마치 전자를 모르는 발전소 같습니다.

JDC는 인공지능 변화의 흐름 속에서 제주의 미래인재들이 인공지능 공존 세상을 이끄는 리더가 되길 바라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 최대한의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많은 참여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류도성> 알겠습니다.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주CBS 류도성 아나운서] ryuds@cbs.co.kr

김해 진영의 ‘나눔의 철학’ 교육가 강성갑.. 추모 동상만 덩그러니

[오마이뉴스 박만순 기자]

▲  1930년대 중반 강성갑-오중은 부부(출처: 홍성표)
ⓒ 박만순

“조카, 느그 아버지 시신이 발견됐데이.”
“정말입니꺼?”

큰아버지 강갑이의 연락을 받은 강성갑의 아들 강흥철은 부리나케 시신이 발견된 현장으로 내달렸다. 시신은 학살 현장인 낙동강변 수산다리에서 2km 떨어진 대산면(현재 경남 창원시 대산면) 모산리 낙동강변에서 발견되었다. 어머니 오중은과 현장에 도착한 강홍철은 기겁을 했다. 아버지의 시신은 퉁퉁 부었고 배는 남산만큼 나와 터지기 직전이었다. 오중은은 남편의 모습을 보자마자 실신했다.

이미 모산리 낙동강변에는 인근 주민 수백 명이 모여들었다. 강성갑의 시신이 나왔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다.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는 정신을 차려야 했다. 강흥철은 큰아버지와 함께 아버지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관을 미처 준비하지 못해 반닫이에 시신을 앉히듯 모시고 흰 천을 싸서 묶었다.

반닫이는 나무를 짜서 물건을 넣어두는 장방형의 단층 궤로 앞널의 위쪽 절반을 상하로 여닫는다. 그래서 시신을 관에 모시듯이 눕힐 수조차 없었다. 더군다나 한여름에 총살을 당해 총 독이 올랐는데 이후 낙동강 하류로 떠내려 오면서 강성갑의 시신이 퉁퉁 부었기에 관에도 모실 수가 없었다. 

모산리 낙동강변에서 운구가 출발할 때는 이미 수천여 명이 따라나섰다. 저명한 목사이자 교육자인 강성갑이 억울하게 죽었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김해시 진영읍 전체에 퍼졌다. 주민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흰 옷을 입고 모여들었다. 운구는 강성갑이 세운 한얼중학교 상급생들이 멨다.

“에헤~ 에헤~ 어허 넘차 어허~/ 간다 간다 나는 간다. 임을 두고서 나는 간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오실 날이나 일러 주오/ 북망산이 멀다더니 대문 밖이가 북망이라.”

선두에 선 요령잡이의 상여소리에 반닫이를 멘 상두꾼들이 후렴구를 붙였다. 운구를 멘 한얼중학교 학생들과 뒤따르는 주민들의 눈물이 대지를 적셨다. 운구는 강성갑의 집을 거쳐 그가 학살 당한 수산다리 밑에 들렀다가 한얼중학교로 갔다. 강성갑의 장례식은 그곳에서 치러졌다. ‘생전에 내가 죽으면 여기 묻어 달라’던 유언에 따라 강성갑은 한얼중학교 교정에 안장됐다. 한국전쟁 초기인 1950년 8월 9일경이다.

‘빨갱이’로 모함을 받아 죽었으면서도 한국전쟁기 한복판에 거창하게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던 강성갑은 어떤 인물일까?

농촌개혁의 꿈을 꾼 강성갑

1912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난 강성갑은 13세에 의령보통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한학을 공부했다. 이후 어머니의 영향으로 신학문을 접하고는 기독교인이 되었다.
그는 마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경남 김해군 장유금융조합에 취직했다. 조선인을 위한 직장이 변변치 않았던 일제강점기에 금융조합은 선망의 직장이었다. 하지만 당시 금융조합은 일제의 농민수탈 첨병 역할을 했다.

강성갑은 금융조합에 근무하면서 조선 농촌과 농민의 참상을 목격했다. 이를 토대로 그는 1930년대 기독교 농촌운동을 전개했다. 비록 ‘농사개량’, ‘부업장려’, ‘협동조합 설립’, ‘관련서적 출판’ 등 체제내적인 개량주의 운동이었지만, 문맹퇴치와 농민계몽, 사회개혁에 관심을 증대시킨 것만은 분명하다.(홍성표, 『한얼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2020, 선인)

장유금융조합을 사직한 강성갑은 1937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1941년에 연희전문을 졸업하고 일본 도시샤대학에 진학했다. 개인의 영달이 아닌 농촌 사회 개혁으로 나라와 농민을 구제하는 기독교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였다.

강성갑은 연희전문과 일본 유학 시절에 1년 후배인 시인 윤동주와 친밀한 관계를 맺기도 했다. 연희전문 시절 학업성적도 우수했다. 훗날 강성갑이 학살되자 그의 스승 원한경은 “연희가 낳은 가장 훌륭한 졸업생이 죽었다”고 탄식했다.

1943년 도시샤대학을 졸업한 강성갑은 귀국해 부산의 초량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내선일체’, ‘동조동근’을 주장하며 조선인의 혼을 말살하려 애쓰던 일제를 비웃기라도 하듯 그는 창씨개명과 신사참배를 거부했다. 

해방 후에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강성갑에게 김해 진영에서 손님이 찾아왔다. “목사님, 진영으로 오셔서 저희 교회 시무목사로 부임하여 주십시오”라는 간청이었다. 1946년 초의 일이다.

이에 강성갑은 조건을 내걸었다. “제가 진영교회에서 농촌운동을 해도 좋습니까?” 손님들은 흔쾌히 동의했다. 그는 단순히 목회활동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기 위해’ 진영으로 간 것이다. 강성갑의 머릿속은 농민이 평등하게 사는 이상사회로 꽉 차 있었다.

강성갑은 진영으로 가기 전 1947년 8월에 부산대학교 교수직을 그만두었다. 당시 그는 진영교회 담임목사와 부산대 교수직을 겸임하고 있었다. 교수직을 유지하라는 주변의 권유에 “대학 교육을 할 사람은 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있지만 농촌 사회 개혁사업을 할 사람은 많지 않으니 진영으로 가겠습니다”라고 강성갑은 답했다.“나에게는 빨갱이고, 노랭이고가 없다”

▲  한얼중학교 제1회 졸업식 사진. 앞줄 좌측에서 5번째가 강성갑(사진 제공: 홍성표)

강성갑이 진영에서 제일 처음 한 일은 ‘복음중등공민학교’ 설립인가를 받고, 야간학교를 연 것이다. 그는 개교 후 가가호호 방문해 “국민학교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더 배우고 싶은 사람은 연령의 적고 많음을 떠나 노트와 연필만 가져오면 무료로 가르쳐 줄 터이니 나오시오”라며 입학을 권유했다.

배움에 목말라 있던 진영에서 강성갑의 존재는 그야말로 ‘복음’이었다. 흙벽돌 교사를 짓는 데에도 교사와 학생이 따로 없었다.

강성갑은 정식 중학교 인가를 시도해 ‘한얼중학교’를 설립한다. 당시 한얼중학교 환경은 매우 열악했다. 교실이라고는 곡물창고 두 채를 개조한 게 전부였다. 그렇지만 그는 배움을 원하는 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가르쳐야 한다는 ‘나눔의 철학’이 있었다.

그는 학생과 교사 들을 모두 ‘동지’로 여겼다. 강성갑은 학교 이름, 교육 목적, 건축 등을 일일이 학생들과 의논했다. “여러분과 나는 학생과 선생의 관계가 아니고 뜻과 함을 합쳐 이 나라를 바로 세워나갈 동지입니다”라는 말이 그의 교육철학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얼중학교’의 ‘한얼’은 순 우리말로 ‘민족정신 같이 하나로 뭉친 정신’이라는 뜻이다. 교사 채용할 때도 전력을 따지지 않았다.

“진영읍 기관장회의에 다녀오신 후에 우리 3학년 학생들에게 하신 말씀이 “유지회의에 갔더니, 어떤 사람이 왜 교장 선생님은 좌익 활동 경력이 있는 사람을 학교 선생으로 채용하느냐 라고 하기에, ‘나에게는 빨갱이고, 노랭이고가 없다. 마음 고치고 예수 믿고 그 인격이 변화되어 나와 손잡고 일하면 누구든지 나의 동지로 생각한다’고 했다고 전하셨습니다(심사수 증언)”.

강성갑기념사업회 심용주(75) 회장은 “강성갑 선생은 교장과 교사 심지어 학교 소사(사환) 월급을 똑같이 책정했습니다”라고 증언한다. 이런 일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결단이었다. 이는 후일 강성갑이 ‘기독교 사회주의’자로 몰리는 근거가 되기도 했다.

강성갑은 배움을 원하는 모든 학생들에게 무료로 가르쳤고, 교사와 교직원, 학생이 동등한 자격으로 교육과 학교운영에 참여하고, ‘나눔과 공동체의 교육철학’에 동의하는 교사라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채용했다. 한마디로 정의하면 ‘나눔과 공동체의 철학’이었다.부통령이 참여한 추모동상 제막식

▲  진영여중에 세워져 있는 강성갑 동상
ⓒ 박만순

“하나 둘 셋”하는 소리와 함께 동상에 씌워진 헝겊 천이 벗겨졌다. 강성갑 추모 동상 제막식에는 함태영 부통령과 이상룡 경남도지사가 참석했다. 공산주의자로 몰려 학살당한 피해자의 동상 제막식에 현직 부통령과 도지사가 참여한 것이다.

1954년 5월 27일 한얼중학교에서 열린 제막식은 성대했다. 추모 동상은 조각가 윤효중이 제작했으며, 동상의 탑신 아래에는 강성갑의 유해가 안치되었다.

한국전쟁 초기에 ‘빨갱이’로 몰려 불법 학살을 당한 강성갑은 가해자 중 한 명인 김병희 진영지서장이 사형되는 특이한 기록을 남겼다. 또 한국전쟁기 민간인 피해자의 추모동상이 세워지는 유일무이한 사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후 강성갑은 진영 지역 사회와 후세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그를 기억하는 소수의 사람 사이에서도 ‘건널 수 없는 강’만큼 상반된 평가가 있다. ‘기독교 사회주의자’, ‘빨갱이’라는 것과 ‘나눔과 공동체의 철학을 실천한 교육가’라는 그것이다. 반 백 년 넘게 후자보다는 전자의 평가가 우세했다. 살아남은 가해자들이 진영에서 오랫동안 살았고 주류 행세를 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성갑이 다시 조명돼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다. ‘학력제일주의’, ‘개인주의’, ‘배금주의’가 판치는 세상에서 강성갑이 실현하려 했던 ‘공동체의 철학’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연세대 연구교수 홍성표는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 민족이 남과 북, 좌·우로 갈라져 갈등과 반목의 사회를 살고 있다. 강성갑 선생의 교육정신을 올바로 되새겨 분단의 시대를 극복하고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했으면 한다”라고 말한다.1954년 강성갑 추모 동상이 세워진 한얼중학교는 진영 읍내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현재 그곳에는 진영여중이 있다. 아직도 그곳엔 강성갑 추모동상이 있지만, 진영여중 학생들과 진영 시민들은 그 존재조차 모른다.

▲  강성갑기념사업회 심용주 회장(오른쪽)과 이종원 사무국장.
ⓒ 박만순

강성갑기념사업회는 진영여중 바로 옆 진영역사공원으로 강성갑 추모동상을 이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강성갑기념사업회 심용주 회장은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역사공원으로 동상을 옮기려고 지역 교육청과 지자체와 논의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또 이전 계획 중인 진영도서관 자리에 강성갑기념관을 만드는 것도 기념회 목표다. 

강성갑을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6.25 때 억울하게 학살 당한 사람 중 한 명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리라.

Leave a Reply